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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자전거> - 탄생 배경, 최초의 제조사, 최초의 자전거 선수

by 스스타다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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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ixabay

 

오늘 저는 공유 자전거인 따릉이를 타고 퇴근을 했습니다. 따릉이는 한국의 공유자전거인데 전용 어플리케이션으로 1시간권을 끊으면 한국 돈으로 1000원 정도에 이용할 수 있는데, 저는 자주 이용하는 편이기 때문에 6개월권을 15,000원에 구입하여 이용하고 있습니다. 주관적인 평가이기는 하겠지만 공유자전거의 경우는 저렴한 이용요금 만큼 페달이 다소 무겁고 기어가 다양하지 않아서 오래 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기 자전거나, 고가인 티타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조금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우리 주면의 탈것 중 자전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자전거의 탄생 배경

자전거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친환경적이고 건강한 이동 수단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전거의 역사는 19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전거의 원형은 독일의 발명가 칼 폰 드라이스(Karl von Drais)에 의해 1817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드라이스는 "드라이지네(Draisine)" 또는 "러닝 머신"이라고 불리는 이 장치를 개발했으며, 이는 두 개의 바퀴와 핸들, 그리고 나무 프레임으로 구성된 매우 간단한 형태였습니다. 이 장치는 페달이 없어서, 사용자는 발로 지면을 밀어 움직였습니다. '발로 지면을 민다'라는 표현이 상상이 잘 되지는 않으나 아마도 속력을 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드라이지네는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발명은 자전거 발전의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여러 발명가들이 드라이지네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860년대 프랑스에서 피에르 미쇼(Pierre Michaux)와 그의 아들 어네스트 미쇼(Ernest Michaux)는 자전거 앞바퀴에 페달을 부착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자전거의 초기 형태를 개발했습니다. 이 "미쇼바이크(Michauline)"는 페달을 사용해 더욱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었으며, 자전거의 대중화를 촉진했습니다.

 

1860년대 후반부터 1870년대 초반까지, 자전거는 점차 발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동 수단이 되었습니다. 특히 1870년대 중반에 등장한 "오디너리 자전거"는 앞바퀴가 매우 크고 뒷바퀴가 작은 독특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속도를 높이는 데 유리했으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 안전성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80년대에 "세이프티 자전거"가 등장했습니다. 이는 앞뒤 바퀴의 크기가 거의 동일하며, 체인 구동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오늘날의 자전거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자전거 회사

자전거가 일반화 된것은 전문 제작사의 등장으로 인한 대중 보급에 있었을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자전거 회사는 프랑스의 "미쇼 컴퍼니(Michaux Company)"라는 회사 입니다. 1860년대 중반, 피에르 미쇼와 그의 아들 어네스트 미쇼는 페달을 장착한 자전거를 개발한 후, 이를 상업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쇼 컴퍼니는 1867년에 설립되어 최초로 대량 생산된 자전거를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이 자전거는 철제 프레임과 나무 바퀴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제품이었습니다. 미쇼 컴퍼니의 자전거는 초기 모델인 "미쇼바이크(Michauline)"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회사는 파리에서 자전거를 생산하고 판매하였으며, 자전거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미쇼바이크를 선보이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쇼 컴퍼니는 자전거의 대중화와 더불어 많은 후속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자전거 산업은 급속히 성장하게 되었고, 유럽과 미국 전역에 수많은 자전거 제조업체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1869년, 미쇼 컴퍼니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파산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유산은 자전거 산업의 중요한 초석으로 남아 있습니다. 미쇼 컴퍼니 이후에도 많은 자전거 제조업체들이 등장하며 자전거는 더욱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제임스 스타리(James Starley)"가 개발한 "오디너리 자전거"와 "세이프티 자전거"는 자전거 디자인의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1880년대 후반, 영국의 "험버(Humber)"와 "로버(Rover)" 같은 회사들은 현대적인 자전거의 형태를 완성하며 자전거 산업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자전거 선수

 

제가 어린 시절에 흥얼거리던 자전거아 관련된 노래에는 '엄복동'이라는 자전거 선수 이름이 등장합니다. 1932년 전조선남녀자전거대회 10000m 우승을 차지한 한국 최초의 자전거 선수인데요. 자전거가 개발된 국가에서는 자전거 대회가 언제쯤부터 시작된 것인지 최초의 자전거 선수는 누구인지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자전거 선수로 알려진 인물은 프랑스의 제임스 무어(James Moore)라고 합니다. 그는 1868년 5월 31일, 파리 서부의 생클루(Saint-Cloud) 공원에서 열린 첫 공식 자전거 경주에서 우승하며 자전거 경기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이 경기는 약 1.2km를 완주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무어는 그의 목제 페달 자전거를 타고 경쟁자들을 제치고 승리를 차지했습니다. 제임스 무어는 이후에도 여러 자전거 경주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869년, 그는 파리에서 루앙까지 약 123km를 달리는 최초의 장거리 자전거 경주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그의 명성을 더욱 높였습니다.

 

무어의 성공은 자전거 경주의 인기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선수에 그치지 않고, 자전거의 기술적 발전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경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전거의 설계와 성능 향상에 기여하며, 자전거 스포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제임스 무어의 활약 이후, 자전거 경주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여러 국가에서 자전거 경주 대회가 열리며,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경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자전거 경주는 점차 프로 스포츠로 자리 잡았으며, 현대의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와 같은 대규모 국제 대회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는 다양한 의미로 인간 삶의 혁명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보행이 전부였던 인간의 이동에 '주행'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심어준 이동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대중화가 시작되며 관련 산업이 발전됐고, 스포츠로 자리매김하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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