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끝 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항로를 찾아 나아가는 가운데, 인생이라는 항해를 함께할 동반자를 만나는 것은 중요한 결정입니다. 저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는 확신에 차서 22세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이라는 배에 탑승했는데요. 고작 2년만에 배는 방향을 잃고 난파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날 그 시간에 멈춰버린 것 같은 제 삶이 이제야 아주 조금쌕 해석되기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여전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담담하게 결혼과 이혼이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삶의 항해를 함께! '결혼'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두고 '한 배를 탔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인생의 항해를 함께하는 동반자를 만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각자의 인생 항로를 하나로 합치는 과정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배에 올라타면서 인생의 바다를 함께 항해하기로 약속합니다. 이때 배의 속도와 방향을 함께 조정하며, 때로는 폭풍을 만나더라도 서로를 지지하며 나아가는 것이 결혼의 본질입니다.
결혼 생활은 잔잔한 바다에서의 평화로운 항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큰 파도와 폭풍우를 만나기도 하며, 항로를 바꿔야 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 속에서도 함께 나아가는 힘이 결혼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다른 경험과 관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이 결혼 생활의 아름다움입니다.
결혼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의 항해에 있어 든든한 동반자가 됩니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혼자서 항해하는 것보다 서로의 힘을 합쳐 나아가는 것이 더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통해 '한 배를 탄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그 안에서 서로를 지켜주고, 지지하는 삶을 꿈꾸는 것입니다.
부부의 끝, 이혼!
하지만 모든 항해가 순탄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두 사람이 함께 타고 있는 배의 속도와 방향에 대해 의견 차이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갈등이 심해지면, 부부는 결국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이는 인생의 항로를 다시 조정하고,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부부가 항해 중에 겪는 갈등은 다양합니다. 서로의 가치관, 생활 습관, 목표 등이 다를 때, 이는 큰 파도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물결에 불과했던 문제가 점차 커지면서 큰 폭풍이 되어 배를 뒤흔들 수 있습니다. 이때 서로가 원하는 방향이 다르다면, 배는 표류하게 됩니다. 때로는 아무도 항해를 신경쓰지 않는 사이 배는 부서지고 망가져 난파선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다소 저의 이야기 같네요.
결혼 2년만에 우리는 더 이상 같은 배에 타고 있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저와 이혼하기 전부터 만나오던 여인을 자기 배에 들였고, 저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덩그러니 서서 꽤 많은 시간을 흘려 보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믿었던 사람에게 느낀 배신의 고통이 분명 대단한 마음의 통증을 동반했지만, 아마도 마음이 떠난 사람과 같은 배에 계속 머물렀다면 저는 더 고통스러웠을 거란 겁니다. 이혼은 고통스럽고 힘들 수 있지만, 때로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필요한 선택입니다. 각자의 인생 항로를 새롭게 설정하고,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약간 방황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해도 고스란히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나면 당신은 다른 항해를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Divorce의 어원
Divorce라는 단어는 고대 라틴어 "divortium"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라틴어 단어는 "divertere"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으며, "길을 달리하다" 또는 "갈라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Di-"는 "멀리" 또는 "떨어져"를 뜻하고, "vertere"는 "돌아가다"를 뜻합니다. 즉, "divertere"는 원래의 길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이 용어가 주로 부부가 결혼 생활을 끝내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이혼이 비교적 일반적이었으며, 부부가 서로 합의하여 결혼을 종료할 수 있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영향으로 이혼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교회는 결혼을 신성한 결합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결혼을 해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 이후 일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이혼을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divorce"라는 단어는 영어로도 자리 잡게 되었고, 현재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어원을 뒤집어서 생각해본다면 결혼생활이란 서로 가까이하며, 길을 같이하며, 길을 동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첫 배우자와 이혼후 20년을 혼자 걷고 있습니다. 경로도 스스로 계획하고 이동 속도 또한 혼자서 결정합니다. 때때로 외롭기도 해서 남자 사람을 곁에 두어 보려고도 하지만 오랜 상처는 누군가를 신뢰하기 어려운 쓴뿌리로 남아있고, 이율배반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혼 전보다 눈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결코 두번의 상처를 받고 싶지 않기에 까다로운 조건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려한다는 것이겠죠.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는 이혼상태이면서 이혼으로 인한 우울감, 상실감, 패배감과도 이혼상태라는 것입니다. 성인이 된 아들을 보니 꽤 긴 시간이었음이 분명한데요. 인터스텔라 속 쿠퍼의 대사처럼 "자식을 위한 유령같은 존재"가 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