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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위의 탈것 <수상교통> - 수상교통의 역사, 증기선의 등장, 타이타닉 사고

by 스스타다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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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ixabay

 

대학교때 대한민국 인천에 있는 을왕리로 MT를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이던 1995년까지만 해도 인천공항은 착공 전이었기 때문에 을왕리를 가려면 인천 월미도에서 무조건 배를 타야만 했습니다. 1박 2일의 즐거운 추억도 잠시, 갑자기 태풍이 불거나 바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배가 뜨지 않아 며칠씩 섬 안에 발이 묶이는 일이 다반사였는데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인간이 물 위를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수상교통의 역사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수상 교통수단은 뗏목이었습니다. 뗏목은 나무나 갈대를 엮어 만든 단순한 구조물로, 강이나 호수를 건너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초기 인류는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이러한 뗏목을 만들어 이동하였고, 이를 통해 새로운 지역을 탐험하고, 식량을 찾는 등의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원전 4천 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갈대를 엮어 만든 보트가 등장했으며, 이집트에서는 나일 강을 따라 통나무로 만든 보트를 사용했습니다. 이 시기의 보트는 주로 강을 따라 이동하며 무역과 교역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고대 문명에서는 주로 나무와 갈대, 가죽 등을 이용해 배를 제작했으며, 점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큰 배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바람을 이용한 범선이 등장했습니다. 범선은 바람을 동력으로 사용하여 항해하는 배로, 당시의 해양 무역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발전시켰으며, 로마 제국은 강력한 해군을 바탕으로 넓은 영토를 관리했습니다. 이 시기의 범선은 주로 삼각돛과 사각돛을 사용해 바람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였고, 이는 장거리 항해도 가능해집니다. 중세 시기에는 선박 기술이 더욱 발전했습니다. 특히 바이킹들은 견고한 목재로 만든 롱십(Longship)을 통해 북대서양을 탐험하고, 유럽 전역을 침략했습니다.

 

이들은 우수한 항해술과 선박 제작 기술로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 아시아에서는 정크선과 삼판선이 발달하여 해상 무역을 더욱 활성화시켰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증기선의 발명이 해양 교통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1807년, 로버트 풀턴이 개발한 클러몬트 호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증기선으로, 강과 해양을 통한 대규모 물자 운송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는 산업혁명과 함께 해상 무역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현대에는 유람선과 크루즈선이 대중화되며, 물 위 교통수단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관광과 여가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대의 유람선은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뗏목에서 시작된 물 위의 교통수단은 이제 기술과 문화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증기선, 인간 삶을 변화시키다


증기선의 등장은 산업혁명과 기술 발전에 기인합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친 산업혁명은 기계화와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활용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는 교통수단의 혁신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증기기관의 발명은 물 위 교통수단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769년, 제임스 와트는 효율적인 증기기관을 개발하였고, 이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었습니다. 증기기관의 개발은 동력 문제를 해결하면서 다양한 교통수단에 적용될 수 있게 하였으며, 이를 통해 증기선을 포함한 다양한 동력선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1807년, 로버트 풀턴이 개발한 클러몬트 호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증기선으로, 허드슨 강을 따라 성공적인 운항을 하였습니다. 이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동력선의 가능성을 입증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증기선의 등장은 해상 운송의 효율성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이전까지의 선박은 주로 바람에 의존하는 범선이었으나, 증기선은 바람의 방향과 무관하게 일정한 속도로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해상 무역과 여객 운송의 혁신을 가져왔으며, 더 빠르고 신뢰할 수 있는 해상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대서양을 횡단하는 증기선의 등장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간의 교류가 활성화됐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증기선 기술은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철제로 만든 선박은 목재 선박에 비해 더 크고 견고했으며, 더 많은 화물과 승객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프로펠러의 개발은 증기선의 획기적인 속도 향상을 실현했습니다. 항해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담보한 최초의 대형 증기선은 1843년, 영국에서 철제로 만들어진 "그레이트 브리튼 호" 입니다. 

 

20세기 들어서는 내연기관과 전기기관이 도입되면서 선박의 동력원이 다양해졌습니다. 디젤 엔진의 발달은 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하였고, 이는 현대 선박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또한, 원자력 추진 기술은 군함과 일부 상업용 선박에 적용되어 매우 긴 항해 거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해상 운송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전 세계 해상 무역을 더욱 활성화시켰습니다.

인류가 기억하는 배 사고  

그러나 망망대해 위는 많은 위험도 도사리고 있는데요. 세계 역사상 최악의 배 사고 중 하나는 RMS 타이타닉 호의 침몰입니다. 케이트 윈슬렛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향하여 애절하게 외처던 "컴백"이라는 대사가 기억될만큼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타이타닉'으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데요. 이 사고는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하여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타이타닉 호에서 일어납니다. 당시 세계 최대이자 가장 호화로운 여객선이던 타이나틱 호는 4월 14일 밤,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였습니다. 이 사고로 약 1,50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는 해상 교통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빙산 경고를 무시한 채 고속으로 항해하던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또한, 구명보트의 수가 탑승 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으며, 승무원들이 구명보트 사용법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승객들이 구명보트를 타지 못하고 익사하게 되었습니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은 해상 안전 규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국제 해상 안전 조약이 체결되어 구명보트의 수와 승무원 교육 등이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또 다른 치명적인 배 사고로는 1945년 1월, 독일 해군의 수송선인 빌헬름 구스타프 호의 침몰 사건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발트해에서 소련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한 이 사건으로 약 9,000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이 배는 피난민과 군인 등 약 10,000명을 태우고 있었으며, 이는 단일 해상 사고로는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이 외에도 1987년 필리핀 도착 예정이던 도냐 파즈 호의 사고가 있습니다. 마닐라를 출발해 레이테 섬으로 향하던 중 유조선과 충돌하여 발생한 화재로 약 4,000명이 사망했습니다. 도냐 파즈 호는 정원 초과로 인해 구조 작업이 어려웠고, 이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대형 사고들은 해상 교통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주며, 안전 규정과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현대의 기술 발전으로 선박의 안전성이 크게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사고의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안전 교육과 규정 강화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해상 교통의 안전성을 더욱 높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알아두면 쓸데 있을 해상 교통과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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